○ 유교시대의 유학자
가. 부현(傅玄)
부현은 ‘믿음’(信)을 매우 중히 여겼다. 즉 그는 “화중에 믿지 않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믿지 않으면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친해지는 방법을 모르면 모든 사람이 자기를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하물며 천하야 어떠하겠느냐” 라고 말했다. 아울러 단언하기를 믿음이 없으면 군신, 부자, 부부, 형제, 붕우의 사이에서도 인륜이 없어지고 말 것이라 하였다.
나. 도연명(도연명)
원래 유교를 근본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염세적인 일면이 있었다. 그의 염세적 인생관은 종종 그의 시속에서 엿보인다. 그의 학설에 의하면 인생이란 기우(寄寓)에 불과한 것으로 마치 시장의 소음과도 같이 하나도 그 근본 뿌리란 없는 것이며, 살아 있을 때 쾌락을 구할 뿐인 것이다. 도연명은 술을 좋아해서 그로 인하여 모든 걱정을 털어버리고 괴짜시인들과 같이 어울렸다. 이러한 인생관은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에 잘 나타나 있으며 그의 저서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도 이상적 사회상을 제시하고 있다.
다. 안지추(顔之推)
노장을 배척하여 노장의 책을 모두 성(性)을 기르며 물질로써 자신의 번거로움을 당하지 않게 하는 무리일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불교는 크게 믿어 불서는 내전(內典)이며, 유교서는 외전(外典)이라 하였다. 내외 양전은 본래 일체가 되어 깊고 얇음이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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