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元豐3年(1080), 소식이 彭城에서 뱃길을 따라 흐른 소감을 쓴 《百步洪二首》중 한 수이다. 친구 參寥스님에게 준 이 제1수는 역시 산천 기행의 감회를 그린 점에서 위의 이백 시와 비슷한 소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이 시 역시 뱃길처럼 숨쉴 새 없이 펼쳐지는 시의의 흐름이다. 그리고 그 시의는 아무데도 “머무는 곳 없는” 대자유의 정신이다. 이 대자유의 정신이란 바로 《金剛經》의 핵심 구절인 “마음에 고착이 없으면 참마음이 살아난다”(應無所住而生其心)는 명제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 순간 이백을 상기했던 것이다. 소식은 이 시의 서문을 이렇게 남기고 있다. “나는 그때 일이 있어서 더 이상 갈 수 없었으므로 밤에 외투를 입고 삼료와 함께 황루에 우두커니 서서는, 이백이 죽은 뒤로 삼백 년 동안 이런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이가 없다고 하면서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余時以事不得往, 夜著羽衣, 佇立于黃樓上, 相視而笑, 以爲李太白死, 世間無此樂三百餘年矣.”
호방한 시풍의 다른 시를 보자.
已外浮名更外身, 區區雷電若爲神?山頭只作嬰兒看, 無限人間失箸人.
(蘇軾《唐道人言:天目山上俯視雷雨, 每大雷電, 但聞雲中如聞嬰兒聲, 殊不聞雷震也》)
속세는 물론 나 자신도 잊고 보니/ 보잘 것 없는 천둥번개 대단치도 않구나// 산정에서 들어보면 어린애 울음소리/ 이 넓은 세상은 온통 부귀 좇는 무리들 뿐.
세속적인 공명이나 자아 집착에서 벗어난 시인이 적자지심의 경지로 보니 그 옛날 젓가락을 떨어뜨리는 순간 천둥소리를 빌려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감추려 했던 류방이 우습게 여겨진다는 시의다. 《有美堂暴雨》시도 그런 멋을 보인다.
游人脚底一聲雷, 滿座頑雲拔不開. 天外黑風吹海立, 浙東飛雨過江來.
十分瀲灩金樽凸, 千杖敲鏗羯鼓催. 喚起謫仙泉灑面, 倒傾鮫室瀉瓊瑰.
나그네 발아래 한 줄기 천둥소리/ 하늘 가득 짙은 구름 겉히지 않네// 하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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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白《送侄良攜二妓赴會稽》云:‘遙看二桃李, 雙入鐿中開. ’ 《別河西劉少府》云:‘自有兩少妾, 雙騎駿馬行.’以是知劉李二君, 皆不羈之士也. 東坡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