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링크로스 84번지>를 읽는 재미는 다양하다. 그들의 관계가 변하는 것을 보는 것은 물론이고, 남들의 편지를 엿볼 수 있다는 즐거움, 위트 넘치는 헬런 한프의 문장과 신사적이면서도 다정스러운 마르크 도엘의 문장들을 비교해보는 것도 <채링크로스 84번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더 강렬하게 기억되는 것은, 책을 생각하며 20여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던 그들을 지켜보는 그 자체일 것이다. 극적인 무언가를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아쉽겠지만 그들은 만나지 않는다. 그저 편지만 주고 받았을 뿐이고 마르크 도엘의 죽음을 끝으로 그들의 관계는 끝을 맺는다고 할 수 있다.
아마 이 이야기만 들은 사람들은 “도대체 뭐가 이렇게 시시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들이 자의든 타의든 발전되지 않는 단계에서 머물렀다는 것이 <채링크로스 84번지>를 극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만나서 무언가를 했든, 가령 로맨스라도 만들어냈다면 <채링크로스 84번지>는 기억되지 못했으리라. 생각해보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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