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1. 이상화 시인의 생애
Ⅱ. 본론
1.작가의 작품 소개
1)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2)역천(逆天)
Ⅲ. 결론
참고문헌
Ⅰ. 서론
1. 이상화 시인의 생애
이상화의 호는 무량(無量), 상화(尙火, 想華), 백아(白啞, 白亞)이다. 1901년 5월 9일 대구 출생이며, 7세때 아버지를 여의고 14세까지 백부의 훈도를 받으면서 가정 사숙(私塾)에서 수학했다. 18세때 경성중앙학교 3년을 마쳤고,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 친구 백기만(白基萬) 등과 함께 대구학생봉기를 주도하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1921년 프랑스 유학을 목적으로 일본에 건너가 아테네 프랑세에서 프랑스어와 프랑스문학을 공부하다가 1923년 9월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를 겪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1927년 의열단 이종암(李鍾巖) 사건에 연루되어 구금되기도 했고, 1937년 백씨 이상정 장군을 만나러 만경(滿京)에 갔다가 돌아오자마자 일본관헌에 붙잡혀 4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그 후 대구교남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교남학교를 그만둔 후 춘향전의 영역본(英譯本)과 국문학사 등을 기획하고 독서와 연구에 몰두했으나, 완성치 못하고 1943년 3월 21일 사망했다. 대구광역시 달성공원에 시비가 세워져 있다. 1917년 대구에서 현진건(玄鎭健)백기만 등과 프린트판 동인지 『거화(炬火)』를 발간하였다. 1922년 홍사용(洪思容)박종화(朴鍾和)박영희(朴英熙)김기진(金基鎭) 등과 함께 『백조』 동인으로 참가하여 말세의 희탄(歎), 이중의 사망, 나의 침실로 등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김기진 등과 함께 파스큘라(PASKYULA)라는 문학연구단체에 가담했으며, 1925년 8월에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의 창립회원으로 참여하였고, 이듬해 기관지 『문예운동』을 주관하기도 했다. 1951년 백기만이 편집한 유고시집 『상화(尙火)와 고월(古月)』에 새벽의 빛이라는 제목 아래 16편의 시가 실려 있다. 그는 민족주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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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 작품은 1926년 6월 『개벽』에 발표된 이상화의 시 작품이다. 발표 당시 비갠 아츰, 달밤-도회(都會)와 함께 발표되었으며, 백기만(白基萬)이 편집한 『상화(尙火)와 고월(古月)』(1951)에 수록되었다. 초기 시에서 볼 수 있는 난삽한 한자 어휘를 피하여 순한글로 시어를 구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연의 시행(詩行)을 순차로 길게 한 것은 의도적인 것이며 이 시의 형식적인 특색이다. 이 시는 비탄(悲嘆)과 허무(虛無), 저항과 영탄(詠嘆)의 사이를 왕복하고 있다는 박두진(朴斗鎭)의 말과도 같이, 남(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겨 얼어붙어 있을지언정, 봄이 되면 민족혼이 담긴 국토, 즉 조국은 우리들에게 민족혼을 일깨워 준다는 것이 이 시의 간추린 내용이다. 다시 말해서 국토는 일시적으로 빼앗겼다 하더라도 민족혼을 일깨워 줄 봄은 빼앗길 수 없다는 강한 저항의식을 기조로 하고 있는 것이다.
가난하고 굶주림 속에서 살아가는 농촌 아낙네들이 흘리는 뜨거운 눈물과 그 소박한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말없는 비애가 있는가 하면, 진한 동족애와 식민치하의 상황의식을 극복하고 일어서는 강한 의지력과 저항의식이 표출되어 있기도 하다. 한마디로 이 시는 ‘지금’과 ‘미래’의 역설적 의미구조를 이루고 있다. 지금은 남에게 강제로 국토를 빼앗겼지만, 언젠가는 국토를 회복시킬 봄은 찾아온다는 식으로 실의(失意)와 희망을 교차시키고 있는 것이다. 빼앗긴 국토에 대한 상실감에서 빚어진 영탄과 국토를 회복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력을 형상화한 것으로 가락이 힘차고 거센 격정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2)역천(逆天)
이 때야말로 이 나라의 보배로운 가을철이다.
더구나 그림도 같고 꿈과도 같은 좋은 밤이다.
초가을 열 나흘 밤 열푸른 유리로 천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