拙藁千百 (졸고천백)
이 책은 고려 후기의 문신 최해(崔瀣)의 문집이다. 2권 2책으로 1354년(공민왕 3) 8월 진주안렴사(晉州按廉使) 곽충수(郭忠守)가 개판(開板)한 책 중 유일본이 일본인 마에다[前田] 후작 손에 들어갔는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하는 것은 없고 일본 존경각문고(尊經閣文庫)에 수장되어 있는 고려판이 유일본이다. 1930년 일본의 육덕재단(育德財團)에서 존경각의 전적 가운데에서 선본(善本)을 가려 영인본을 간행할 때에 『졸고천백』도 영인되어 현재 규장각 도서에 있다. 『졸고천백』은 1973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영인하고 간행한 『고려명현집 2』에 수록되어 있다.
『졸고천백』에는 45편의 산문이 시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권1은 서(序) 6편, 기(記) 4편, 후제(後題) 2편, 발 1편, 묘지 3편, 묘지명 4편, 문책(問策) 1편, 권2는 서 5편, 묘지 9편, 행장 1편, 서(書) 3편, 제문 1편, 영혼사(迎魂辭) 2편, 비문 1편, 전(傳) 1편이 수록되어 있다. 『동문선』에는 이 중 32편이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다른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서 고려사 및 고려문학 연구자료로 귀중한 문헌이다.
최해가 편찬한 『동인지문(東人之文)』의 자서(自序)인 「동인지문서」에 따르면, 시 약간수를 오칠(五七), 문 약간수를 천백(千百), 변려문(騈儷文) 약간수를 사륙(四六)이라 하였다. 『졸고천백』의 ‘천백’도 바로 이 문을 두고 한 이름이다. 이 책에는 한편의 시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동문선』에 약 30수가 뽑혀 있으므로 최해의 다른 저작집이 당대에 간행된 듯하다.
『졸고천백』에는 우리나라 한문학이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넘어오는 과도기적 상황을 재현시켜 놓았다. 그 중에서도 「해동후기로회서(海東後耆老會序)」「동인지문서」「동인사륙서(東人四六序)」 등은 문학사에서 주목해야 할 글들이다.
직지심체요절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으로, 원래 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 직지심체요절`이고 `직…(생략)
|
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은 `직지심체요절`의 권하뿐이고 권상은 일실되어 없다. 그리고 권하의 첫장은 결락되었다.
`직지심체요절` 권하의 마지막장에는 `선광칠년 정사칠월일, 청주목외흥덕사주자인시`라는 `간기(刊記)`가 있어, 바로 이 책이 언제 어디서 어떤 인쇄수단으로 발행되었다는 것이 소상하게 명기되어 있다. 간기(刊記)는 주조활자개발면에서 한국이 독일에 앞섰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굳혀준 물증이다.
`직지심체요절`은 2001년 9월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가 선정하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2004년엔 유네스코에서 직지심경의 이름을 딴 `직지상`이 제정되었다.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있다.
왕오천축국전
이 책은 1909년 중국학자 나진옥(羅振玉)에 의하여 ≪왕오천축국전≫임이 확인되었고, 1915년 일본의 다카쿠스(高楠順次)에 의하여 그 저자가 신라 출신의 승려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1928년 독일학자 푹스(Fuchs,W.)에 의하여 독일어 번역이 나왔고, 1943년 최남선(崔南善)이 이 원문과 해제를 붙임으로써 널리 국내외에 알려지게 되었다.
필사본. 1권 1책. 신라시대의 승려 혜초(慧超:704∼787)가 고대 인도의 5천축국을 답사한 뒤 727년(성덕왕 26)에 쓴 책이다. 이 책은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 P.펠리오가 중국 북서 지방 간쑤성[甘肅省]의 둔황[敦煌] 천불동 석불에서 발견하였으며 중국의 나진옥(振玉)이 출판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이 책에는 당시 인도 및 서역(西域) 각국의 종교와 풍속문화 등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다. 그때는 벌써 불타(佛陀)의 유적은 황폐하여 기울어져 가고 있었으며 사원은 있으나 승려가 없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느 큰 사원에는 승려가 3,000여 명이나 있어서 공양미가 매일 15석이나 소요되어 유지하기가 어렵게 된 곳도 있다고 하였다.
또한 대소승(大小乘)이 구행(俱行)하고 있으나 곳에 따라 대승만 행하는 곳도 있고, 소승만 행하는 곳도 있으며, 북방에는 사원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