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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 龍之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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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일본의 근대 소설가 (1892~1927)
150 여 편 이상의 단편소설을 남김.
1913년 도쿄 제국대학 영문과 입학.
1915년 <라쇼몽> 발표.
1916년 <코>를 발표하고 문단 진출.
대학 졸업 후 해군기관 학교의 영어 교관 재직.
1919년 오사카 매일 신문에 입사. 본격적 글 발표.
1927년 4월 동반 자살 시도하였으니 실패
1927년 7월 ‘막연한 불안’ 이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
1935년 친구 기쿠치 간에 의해 아쿠타가와 상
제정. 현재 일본의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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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모의 광기와 죽음
양가 사람들의 에고이즘
아쿠타가와의 어두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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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3월 1일 도쿄에서 태어남.
1) 생모의 광기와 죽음
아버지 니히하라(43세)
어머니 후쿠(33세)
장녀
하츠
차녀
히사
막내
류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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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의 발광으로 인해 류노스케는 아쿠타가와 가에 가서 양육 됨.
1) 생모의 광기와 죽음
나는 그때도 지금처럼 몸이 허약한 아이였다. (중략) 나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내가 마지막으로 경련을 난 9살 때의 일이다. 나는 열도 있고 해서, 잠자리에 누운 채로 이모의 머리카락을 묶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 어느 샌가 경련이 나는 가 했더니 쓸쓸한 해변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해변에는 인간보다도 괴물에 가까운 여자가 속치마인 채로, 투신 자살을 하기위해 두 손을 합장하고 있었다…(생략)
2) 양가 사람들의 에고이즘(이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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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중 한사람은 정확히 방 한 가운데에 서서, 춤춘다기보다도여기저기 뛰어 다니고 있었다. (중략) 그의 어머니도 10년 전에는 조금도 그들과 변함이 없었다.
「어느 바보의 일생」
머리도 미친 듯이 보이고, ‘저렇게 깃발을 세운 군함이 왔다. 모두 만세를 외쳐라’ 따위를 말하였다.
「점귀부」
생모 후쿠의 광기에 대한 불안과 공포.
자신 또한 부모의 유전에 의해 미쳐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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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모의 죽음이 문학창작에 미친 영향- 죽음에 대한 인식
1) 생모의 광기와 죽음
유전, 환경, 우연 - 우리들의
운명을 지배하는 것은 필경 이 세 가지이다
「난장이의 말」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너는 이 세계에 태어날 것인가 어떤가, 잘 생각한 후에 대답을 해라」라고 묻자, 어머니 배 속에 있는 아이는「나는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제일 먼저 아버지의 유전은 정신병만으로도 큰일입니다. 게다가 나는 갓파적 존재를 나쁘다고 믿고 있으니까요」
「갓파」
생모 후쿠의 광기에 대한 불안과 공포.
자신 또한 부모의 유전에 의해 미쳐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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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양가 사람들의 에고이즘(이기주의)
양자가 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
후쿠의 여동생인 후유가 실부의 후처가 되는
조건으로 정식으로 양자로 입적하게 됨.
실부-니이하라 도시조
양부-아쿠타가와 도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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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양가 사람들의 에고이즘(이기주의)
11살때 정식으로 아쿠타가와가에 입적하게 되어 일생동안 양가 사람들과 살게 됨.
아쿠타가와 가문은 대대로 에도 막부 관리로서 비록 가세는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