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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릴열도 분쟁이 원인, 역사, 분쟁의 쟁점, 문제점, 선점론, 조약의 문제, 잊혀진 분쟁의 희생양, 아이누족, 특징, 현황, 관리, 기법, 시사점 )
목 차
1.들어가며
2.쿠릴열도는?
3.분쟁의 역사
1)19세기 이전
2)19세기~20세기 초
3)20세기 중반~현재
4)분쟁에 관련된 최근의 이야깃거리
4.분쟁의 쟁점 및 문제점
1)선점론
2)조약의 문제
5.잊혀진 분쟁의 희생양, 아이누족
6.마치며
1. 들어가며
쿠릴 열도의 남쪽 4개 섬에 대해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있는 영토 분쟁이다.
홋카이도의 네무로 반도의 앞바다에 있는 섬들은 태평양 전쟁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에 귀속되어 있으며, 전후 일본이 러시아에 반환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현재 일본인이 쿠나시르 섬에 비자 없이 들어가는 것을 러시아측에서 일부 인정하고 있다.
일본 우익 관료들은 네 개 섬과 함께 쿠릴 열도와 사할린 섬 남부(때로는, 사할린 섬 전체)도 “북방 영토”에 포함되어, 이것이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세르게이 라브로프(Lavrov) 러시아 외교부 장관이 2007년 6월 3일 이곳 쿠릴 열도 지역을 전격 방문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외교장관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일부 언론은 이번 방문이 러시아 정부의 단호한 지배권 강화의 자세를 상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은 여러 가지 의미로 특별한 나라이다. 일본은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하여 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였으며, 전범국가로 낙인이 찍혔음에도 훌륭하게 경제 성장을 성공하여 현재 중국에 이어 아시아에서 제일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나라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2차 대전시기에 벌였던 사건들로 인하여 독도, 조어도, 쿠릴 열도 등, 현재 동북아시아들 중에서 제일 많은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어째서 2차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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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해리의 배타적 경제 수역1)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전략적,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 쿠릴 열도의 대부분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거하여 대부분 러시아의 영토로 인정되어 지배하고 있으며, 일본과 러시아가 분쟁을 벌이고 있는 지역은 이중에서 홋카이도 북쪽에 위치한 쿠나시리, 에토로후, 하보마이 시코탄의 4개의 섬인 일본에서 부르고 있는 `북방 4도`이다.
<일본 홋카이도 북부 지방의 쿠릴 열도.2)>
3. 분쟁의 전개 과정
1) 19세기 이전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이곳 쿠릴 열도는 러시아와 일본 간의 특별한 경계에 대한 분쟁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이때의 분쟁은 주로 원주민인 아이누족들 간의 분쟁이었다. 훗카이도 지방에 분포하고 있었던 아이누족은 자신들의 문화 및 터전을 지키기 위하여 일본과 전쟁을 벌였다. 일본은 쿠릴 열도를 비롯한 아이누족이 분포한 지역(지금의 홋카이도)을 에조치(蝦夷地)라고 불렀는데 이는 아이누족의 땅이라는 언뜻 보면 단순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일본의 땅`이 아닌 `아이누족의 땅`이라는 즉,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3) 이 때 일본의 정부였던 에도 막부는 마츠마에 가문을 이 에조치 지역의 다이묘로 삼아 이들에 대한 지배를 명하였고, 이로 인해 18세기 말까지 이르러 일본은 홋카이도 지방 전체와 사할린의 남부, 지금의 남쿠릴 지방으로까지 진출하였다. 하지만 이 당시의 진출은 일본의 영토로 삼으려는 목적이 아닌, 이민족의 지방에 관한 경제적 지배권을 목표로 한 진출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곳을 이 때 일본의 영토라고 보기에는 어렵다.4) 실제 후에 실행한 홋카이도 및 쿠릴 지방을 영토화하려는 정책은 러시아가 남하하고 있다는 소식에 의한 위기감으로 인해 벌였던 것이지, 본래부터 자신의 영토로 삼아야겠다는 의지가 아니었다.
이때 일본만이 아닌 러시아도 쿠릴 열도에 대한 진출을 진행하고 있었다. 러시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