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
( 연개소문 인물소개, 정권장악 전개분석, 전쟁 성공전략, 사후 인물전개 조사분석 )
목 차
1.머리말
2.본문
1)가계
2)연개소문의 정권장악
3)나라 지키는 연개소문
3.맺음말
1. 머리말
연개소문은 7세기 중반 고구려 최고의 실권자로 동아시아 국제 정세를 이끌었던 역사 인물이다. 하지만 기록에서 그의 행적은 지극히 불완전하다. 흔히 성정이 잔인, 포악하면서도 신출귀몰한 인물로 묘사되고, 정변을 통해 임금(영류왕)과 중신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왕(보장왕)을 세운 반역자로 표현되고 있다. 반면 긴박한 대외 관계 속에서 고구려의 위상을 떨친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연개소문이 정말 포악하기만한 반역자인지, 드라마에서처럼 나라를 구한 위대한 무인인지 생각해보고자 하였다. 이번 조사를 통해 연개소문이 어떠한 과정으로 고구려의 정권을 장악하였고, 당시 국제적으로 고구려가 어떠한 처지였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 본문
1). 가계
태어난 해는 알 수 없으며, 죽은 해는 《삼국사기》에 보장왕 25년(666)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그의 아들인 남생(男生)의 묘지명 [천남생묘지명(泉男生墓誌銘)]에 의하면 보장왕 24년(665)에 죽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자유(子遊)이고, 아버지는 태조(太祚)로 이들은 모두 막리지(莫離支)의 지위에 올랐다.
2). 연개소문의 정권장악
연개소문의 아버지가 죽은 뒤, 뒤를 이어 막리지에 오름을 귀족들은 연개소문의 성품이 포악하다하여 반대하였다. 이에 연개소문은 귀족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계승을 간청하였고 뿐만 아니라, 만약에 자신이 옳지 않은 일을 할 시에는 죽여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했다.
막리지에 오른 연개소문은 수나라가 살수에서 을지문덕 장군에게 당한 …(생략)
3). 나라 지키는 연개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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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조로써 고구려 원정을 그만두도록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나라는 태종이 죽고 고종이 즉위하자 다시 침략의 준비를 서두르게 된다. 보장왕 14년에 정명진과 소정방으로 하여금 고구려를 정벌하게 하였고, 17년에는 적봉진(赤峰鎭)싸움이 있었으며, 19년에는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킨 뒤 또다시 쳐들어왔지만 연개소문은 당나라의 옥저도총관 방효태를 사수 위에서 요격하는 한편 평양으로 추격하는 소정방을 물리쳐 당 고종의 침략야욕을 재차 꺾어 버렸다.
하지만 그토록 강성하던 고구려도 연개소문의 죽음(665년)과 함께 갑작스런 패망의 길로 접어든다. 668년(보장왕 27)
3. 맺음말
연개소문이 다스린 25년간 당나라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크고 작은 침략을 감행했으나 고구려는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고구려는 멸망하였고, 때문에 연개소문에 관한 기록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연개소문의 부정적인 평가로는 국방력강화만의 중점을 둔 점이다. 백성들의 기아와 궁핍이나, 국제교류관계,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비용과 인력의 손실로 인해 연개소문 이후 고구려가 지속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 개인적 권력만이 아닌 나라를 구하고자한 연개소문은 높이 평가해야할 것이다. 더불어 신채호가 말했듯이 남아있는 기록만으로 연개소문을 평가하지 말고 그가 떨친 고구려의 위상과 나라를 지키려 하였던 뛰어난 우두머리로써의 면모를 알아야할 것이다.
*참고자료*
1.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 http://people.aks.ac.kr/index.aks
2.고구려산책 : http://www.freewal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