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서론
여요 청자 수선화분
Ⅱ.본론
1.여요
2.오대 명요
3.송대의 다른 주요 요지
(1)관요
(2)가요
(3)균요
(4)정요
Ⅲ.결론
송대 도자
Ⅳ.참고문헌
Ⅰ. 서론
여요 청자 수선화분
북송(北宋)
여요(汝窯) 청자 수선화분(靑瓷水仙盆)
높이 6.9 cm, 너비 23 cm, 길이 16.4 cm, 구경 23 cm, 저경19.3x12.9 cm, 중량 670 그램
이 타원형으로 생긴 화분은 입이 크게 벌어져 있고 벽이 깊다. 바닥은 평평한데 그 모서리 부분이 약간 돌출되어 있고, 구름모양으로 생긴 네 개의 다리가 있다. 둘레 벽의 태토(胎土)는 얇지만 바닥과 다리는 약간 두껍다. 몸체 전체에 하늘색 푸른 유약(釉藥)이 가득히 뿌려져 있는데 대단히 균일하고 매끄럽다. 바닥 부분의 유약이 고인 곳은 약간의 옅은 벽옥색을 띄고, 입과 모서리의 유약이 적게 발린 곳은 엷은 분홍색을 띤다. 다리를 받치고 구워 바닥 부분에 여섯 개의 작은 지정(支釘)의 자국이 있는데 미황색(米黃色) 태토가 약간 드러나고 보이고 있다. 그릇 전체적으로 유약 표면이 아무 무늬 없이 깨끗한데 지금까지 전해지는 여요(汝窯)의 자기 중 이러한 예는 아주 드물다. 그 온화하고 우아한 빛깔과 광택은 바로 송나라 사람들이 추구했던 비 온 후 파란 하늘과 같은 고요하고 맑은 아름다움이다.
Ⅱ. 본론
1.여요
현재 가마터는 분명치 않고, 다만 기록에 의하면 북송 말기인 정화(政和)?선화(宣和) 연간에 궁중의 어용품(御用品)을 구워낸 도요로, 그 제품은 일찍이 없던 일품(逸品)이었으며, 남송시대에는 이미 그 유품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전하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백점이 되지 않는다. 기록에 의하면 여주 일대에는 속칭 북방청자(北方靑瓷)라고 불리는, 무늬 있는 올리브색의 청자를 굽던 가마터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어, 한때는 여요가 북방청자의 생산지에 해당한다는 설도 있었다. 그러나 북경의 고궁에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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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유색은 분청색(粉靑色)에 유약층이 밝고 맑아서 얼음이나 옥처럼 보이며 극히 정치한데, ??자주철족(입술은 자주색을 띠고 밑둥은 짙은 흑갈색을 보임)??은 한층 고박 전아한 아름다움을 더한다.
(2)가요
명(明) 낭영(郞瑛)(1487-1566)의 <칠수류고七修類稿>에 다음과 같이 가요哥窯(형의 가마)와 제요弟窯(동생의 가마)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가요와 용천요는 모두 처주 용천현에서 산출된다. 남송 시기, 장생일과 장생이 형제가 있어 각각 가마를 하나 맡고 있었다. 장생일이 빚은 것은 가요라 하며 형이기 때문이다. 장생이가 빚은 것은 용천이며 지역으로 이름을 붙였다. 그 색은 모두 청색으로 진하기가 한결같지 않고 굽은 모두 철색으로 역시 농담이 다르다. 옛날에 들었던 자구철족은 지금 적게 보인다. 태토가 곱고 기벽이 얇으며 유약이 순수한 것이 가장 귀하다. 가요는 빙렬이 많으며 ??백급파`라 한다. 용천요는 지금까지 온주와 처주의 사람들이 장요라고 부른다. 듣건대 명나라 초기의 선정과 장일은 바로 그의 후예라고 한다.??가요의 자기는 유약면의 빙렬을 충분히 활용해 미적 가치를 높였다. 그물처럼 교차되는 금사철선(金絲鐵線)과 자구철족이 특징이며, 특히 금사철선의 빙렬은 고요한 유면에 운율감을 준다.
(3)균요
불투명한 유약인 실투유(失透釉)를 입힌 도기로, 북송 말(北宋末)에서부터 금(金)?원(元)대에 걸쳐서 하남성(河南省) 각지에서 제작되었다. 균요에서는 청색 유약을 입혀 빚은 북방청자(北方靑磁)와 진사(辰砂)를 이용해서 청자유 밑에 붉은 반점의 무늬인 동홍유(銅紅釉)가 있는 병모양의 아름다운 자기들을 제작했고, 또, 자줏빛과 붉은빛이 나는 유약을 입힌 우수한 제품도 많다. 균요자기는 분포지역이 넓기 때문에 태토(胎土)의 색과 질감에 있어서 변화가 심하다.
(4)정요
정요는 오대 명요 중에서 유일하게 주로 백자를 생산하던 가마이다. 정요에서 전문적으로 제작된 제품은 크림색의 정교한 백자로서 송대의 궁중 어용품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