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벽화와 고대 동아시아의 벽화천문전통 연구
고구려 벽화와 고대 동아시아의 벽화천문전통 고찰
: 일본 기토라 천문도의 새로운 동정을 덧붙여
1. 서 론
하늘의 별자리를 관측하고 그것으로부터 천체 운행의 변화를 살펴 인간 사회에 필요한 시간의 법칙을 찾는 일은 인류 역사가 태동하면서부터 맨먼저 관심을 기울인 작업 중의 하나일 것이다. 계절이 바뀌고 달이 영축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월의 운행 주기 문제를 고심하였을 터이며,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천상의 별자리를 관찰하면서 우리의 주위를 둘러싼 우주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자 노력하였을 것이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는 그같이 고대인들이 고심하였을 고천문학의 흔적들이 잔뜩 담겨있다. 동서로 뜨고 지는 해와 달을 비롯하여, 사방위 사계절로 관찰되는 별자리들과 28수의 분속을 위해 제기되었던 사신도가 어떤 일련의 시스템 속에 구축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공전과 자전의 회전축과 관련된 地軸의 북극과 남극에 대한 고민도 선명한 그림 한 장으로 담아놓았다. 이같이 유물 벽화로 전해지는 고구려의 천문 자료들은 자신들이 관찰하였고 사유하였던 고대 천문학의 흔적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의 사료이다.
이러한 고구려의 천문 자료들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와 천문학사적인 역할을 어떻게 조망할 수 있을까? 최근 일본의 아스까 지역 기토라 고분에서 발견된 전천천문도가 고구려의 천문 전통으로 접근되고 있으며, 고구려의 역사 문화를 계승하였던 고려의 왕릉 벽화에서도 고구려의 천문시스템과 밀접한 내용들이 그려져 있다. 또한 고구려와 역사적 전승 관계에서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후대의 요나라 무덤벽화 속에서도 상당한 천문성수도들이 묘사되어 있는 등 우리의 시야를 보다 넓은 고대 동아시아의 사회 일반으로 확장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중국 고대의 천문학사에 대해서는 국제학계 차원에서도 심화된 연구 성과물을 지니고 있지만, 그 속에서 고구려의 천문이 지니…(생략)
2. 중국 고대의 천문성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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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가 기록되었고, 진시황의 一統 제국주의 이념 창출에 기여를 한 『여씨춘추?有始覽』에 이르면 비로소 角에서 軫까지의 28수 명칭이 처음으로 전부 입전되어 나타난다.
이 『여씨춘추?유시람』 계통의 28수명이 한무제시기 성립된 『회남자?天文訓』에도 수록되었고, 같은 시기 사마천의 『사기?天官書』(歲星條)에서 관찬 견해로 수록되면서 표준화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진서?천문지』가 편찬되던 初唐 사이 곧 漢唐之間에 어떠한 유통 경로를 밟아 정착되어 왔는지를 직접 전거하기에는 현전하는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 다만 후한의 太史令이었던 張衡(78-139)이 『靈憲』에서 관측 가능한 항성의 갯수를 “中外之官 중에 常明者 124개, 可名者 320개, 爲星者 2500개, 微星者 11,520개”라 하였다. 진나라의 太史令이었던 陳卓(265-280년간 활동)이 고대 甘?石?巫咸의 三家가 그린 성도를 각기 적, 흑, 백의 세 가지 색깔로 구분하면서 총 283官 1464성을 담은 천문도로 그렸다 하나 전하지 않는다.(『진서?천문지』)
정리하자면, 진한시대에 『여씨춘추』 『회남자』 『사기』를 거치면서 1차적으로 전체 별자리의 정립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물이 『사기?천관서』에 92관 500여개의 별자리로 수록되었다. 다음 후한, 위진을 거치면서 수당시기에 2차적인 중국 별자리의 확립이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물이 진탁의 三家星圖에 바탕하여 241관의 별자리로 정리한 『진서?천문지』(당고종대 태사령 李淳風 편찬)와 이를 그대로 전재한 『수서?천문지』(李淳風 편찬)의 내용이다. 그리고 3원 28수 형식을 분명하게 정립시키면서 총 281좌 1445성을 수록한 中唐시기 무렵의 『步天歌』(丹元子 王希明 찬)라 할 수 있는데, 특히 『보천가』의 별자리 형태는 이후 전통 천문성도의 표준으로 널리 전승되며, 고려로도 전해져 司天臺의 천문 교재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당나라는 통일제국으로서 위진남북조의 대혼란기를 겪으면서 흩으러져버렸던 천문 역법 상서에 대한 정리와 연구 작업을 통하여 천문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