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대의 감시와 처벌과 이에 대한 마르크스와 푸코의 분석
1757년 3월 2일, 국왕 살해범인 다미앙Dimiens에게 다음과 같은 판결이 선고되었다. <파리의 노틀담 대사원 앞에서 2파운드의 불타는 양초 횃불을 들게하고 셔츠만을 걸친 채로 사형수 호송차에 싣고 가서 공중에게 공개사죄amende honorable를 하게 하고>, <그레브광장Place de Greve에 끌고 가 그곳에 세워질 사형대 위해서 그의 가슴, 팔, 허벅지 그리고 종아리의 살점들을 발갛게 달군 집게로 떼어내고 그의 왼손은 국왕을 살해하고자 했을 때의 단도를 잡은 모습 그대로 유황불에 태우고 살점들이 떨어져나간 곳에는 용해된 납과 끓는 기름, 불타는 송진 그리고 밀랍과 유황의 용해물을 붓고, 몸은 네 필의 말이 끌게하여 네 조각을 내어 팔다리와 몸뚱이는 불에 태워서 재로 만든 뒤에 바람 속에 날려 보낼 것.
감옥의 탄생이라는 부제가 붙은 ??감시와 처벌??은 루이 15세를 암살하려했던 다미앙이란 죄수에 대한 위와 같은 끔찍한 고문과 공개처형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판결문 뿐 아니라 그 판결문보다 훨씬 끔찍했던 죄인의 실제 처형장면이 아주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푸코의 고전 시대, 즉 절대군주시대의 법적 권위는 국왕으로부터 오고 국왕의지의 표상이므로, 범법행위는 군주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었다. 범법자에 대한 공개처형은 시민들에게 군주의 절대권력을 재확인시키는 상징적 의미이다. 그러나 의식화ritualization된 것은 군주의 권력만이 아니다. 죄인을 고문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자백을 받아냄으로써 고발과 처형이 정당하는 것을 입증하는 의식이기도 했다. 법률적 지식과 권력이 연합하여 죄인의 ‘신체’에 권력이 행사되는 것이다.
형법과 교화에 관한 기존의 주장들은 절대왕정시대의 행형제도에서 인도주의적 형법이념으로, 테러에 의한 통치기술에서, 교화에 의한 사회통치로, 보복법에서 복귀법으로의 이행을 행형제도의 진보요 발전이라고 여기나, 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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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다. 원형감옥은 중앙에서 격리 수용된 죄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으나 죄수들은 중앙을 볼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죄수들간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감시자가 없더라도 권력의 효과는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런 감옥의 배열이 이바지하는 교묘한 목적은 자신이 계속적인 감시하에 있다는 것을 죄수가 의식하리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권력이 특정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원형감옥이 상징하는 장치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으며, 오히려 개인의 이러한 권력장치의 한 효과로서 나타나고 개인의 주관성은 권력이 개인에게 작용한 영향력의 소산일 뿐이다.
푸코에 의하면 원형감옥은 현실적으로 널리 유행하지는 못했지만 전명적 통제와 감시를 가능하게 하는 벤담의 발상은 현대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일반화 될 수 있는 권력 메카니즘의 이념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서구의 근대는 곧 감옥을 확대하는 과정이었다고 보는데 ‘학교 공장 병영은 (게으름·나태함·태만을 처벌함으로써) 시간의 사용을 세심하게 통제하고 (부주의·무지·열의부족을 처벌함으로써) 행위 방식을 규제하고 (잡담·거만한 말·속어를 처벌함으로써) 언어 사용을 규제하고, (복장불량·더러움·반사적 행동의 실수를 처벌함으로써) 신체를 통제하며, 마지막으로 (불륜·외설·비정상적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성을 통제한다’. 감시와 처벌을 통해 인간은 ‘유순한 신체’로 훈육되고 조절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개인들은 감시의 시선을 내면화·신념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처벌체계를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하여 계급구조로 환원시켰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감옥체계가 가진 권력의 기술을 식별할 수 없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고전적 저서인 ??처벌과 사회구조??(punishment and Social Structure)는 마르크스이론의 한계들을 나타낸다. 그들은 전형적인 마르크스주의 방식으로 ?특수한 처벌형식은 주어진 경제발전단계와 부합한다?는 선언을 하게 되는데 결국 감옥의 역사는 그들에게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