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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국전쟁 625

등록일 : 2010-03-02
갱신일 : 201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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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국전쟁 625 - 미리보기를 참고 바랍니다.
한국전쟁 -냉전의 시작


1945년 일본은 미국의 원자폭탄으로 인하여 무조건 적인 항복을 하였고, 덕분에 한국은 36년간의 일본 식민지 시대로부터 벗어나 해방의 기쁨을 누릴 수가 있었다. 사람들의 의식은 이미 36년간의 일본 식민 통치기간동안 조선의 봉건주의로부터 벗어나 있었고, 양복을 입고 서양 사람들과 친분을 맺는 등 새로운 문물인 서양문물을 받아드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에 대해 갈망하고 있었고, 또 그 기대에 발 맞춰 우리나라는 많은 변화를 하고 있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국과 소련은 하나의 정부를 바라지 않았다. 한반도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서로 통치하기를 원했고 정치적인 목적으로 위도 38도에는 선이 그어졌다. 그래서 38도 위쪽 지역은 소련의 통치하기로 하였고, 38도 아래 지역은 미국에 의해 통치하기로 하였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분단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두개의 나라에 의해 신탁통치 되었지만 자유로운 왕래도 있었고 정부가 들어선다면 다시 하나로 합쳐 질 수 있다고 믿었다. 국민들은 일제 찌꺼기를 청산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야만 주권을 회복할 수 있고, 하나의 통일된 국가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의 통치 방식은 남북한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아가게 하였으며 두개의 이데올로기를 심어 놓았다. 사회성격의 차이로 인하여 사람들의 마음은 갈라지기 시작하였다. 통일 방안에 대하여서도 공산주의로 통일해야 한다는 그룹과 민주주의로 통일해야 한다는 그룹과 어떤 방식을 채택하던 우선 통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세 그룹으로 나뉘어 졌다. 김일성, 박헌영이 속한 공산주의는 북한 쪽에 자리를 잡았고, 이승만, 김구가 속한 민주주의는 남한 쪽에 자리를 잡았다.
결국 사회성격의 차이는 남북한간에 서로 다른 두개의 정부를 수립하게 하였으며,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 참상을 만들어 내었고, 전쟁이 끝난 1953년 7월 27일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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