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인상파 그림
𠌔년대 모네는 불안정한 뜨내기 생활을 했고, 그림은 거의 1점도 팔지 못했다. 그러나 해마다 열리는 살롱 전에서는 몇몇 작품이 입선했으며, 특히 카미유의 초상화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그림은 훌륭하긴 했지만 아직 인상파 회화는 아니었다. 1868년에는 르아브르에서 훈장을 받았다. 게다가 그는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파리를 비롯해 르아브르·샤이·옹플뢰르·트루빌·페캉 등 여러 곳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1860년대에는 라그르누예르라고 알려진 센 강 연안의 휴양지 부지발에서 순조롭게 지냈다. 여기서 그는 르누아르와 처음으로 함께 그림을 그렸다. 그들은 휴양객들과 목욕하는 사람들, 뱃머리를 까딱까딱 움직이고 있는 보트들, 그리고 찰싹거리는 물 속에 비친 반짝이는 그림자를 거의 같은 양식으로 화폭에 재빨리 담았다. 모네가 '형편없는 스케치'라고 말한 이 그림들은 이미 인상파 양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두 화가의 스케치는 자연광과 야외생활의 움직임을 감지한 순간 즉흥적이면서 강렬하고 간결한 붓놀림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이 붓놀림들은 한데 어울려 시각적 경험과 동등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시각적 경험이 그토록 솔직하게 화폭에 옮겨진 적은 일찍이 없었다. 1870년 트루빌 해변에서 모네는 카미유를 대담하고 자신만만하게 그렸다(런던 테이트 미술관 소장). 이 그림은 그때까지 그려진 모든 그림들 가운데 가장 생기발랄한 시각적 사실주의를 보여주었다. 이 그림에는 모래알들이 그림물감 속에 그대로 박혀 있었다.
𠌞년대에도 모네는 자연 현상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이 전쟁을 피하기 위해 얼마 전에 결혼한 카미유와 아들 장을 남겨놓고 런던으로 갔다. 그곳에서 피사로와 함께 도비니를 통하여 미술상 폴 뒤랑 뤼엘을 소개받았다. 뒤랑 뤼엘은 그의 그림을 맡아서 팔아주는 대리인이 되었다. 1871~72년 네덜란드의 운하·배·풍차를 그렸고, 다시 르아브르로 와서 작업한…(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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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서양미술대전집 20) : W. C. 세이츠, 송기매 역, 중앙일보사 출판국, 1991 모네(GREAT ART 27) : 이경성, 지소림, 1987 모네(세계미술문고 26) : 금성출판사 편집부 편, 금성출판사, 1976 모네(서양미술전집 10) : 한국일보사 문화부 편, 한국일보사 출판국, 1972 인상파화가(19세기회화사 3) : 이항성 편, 문화교육출판사, 1964 Monet at Argenteuil : Paul H. Tucker, 1982 History of Impressionism, 4th rev. ed. : John Rewald, 1973 Claude Monet, sa vie, son temps, son oeuvre : Gustave Geffroy,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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